▲ 지리산.

필자는 넉넉함도 부족함도 없는 적당함이 좋아 지리산 정상(1,915ｍ)을 틈틈이 오른다.

오늘(지난 27일)도 0시 5분께 잠을 갰다. ‘콜’이 결코 감미로울 순 없다.

정상에 도착하니 아직 어둡고 밤하늘의 둥근달은 서쪽 하늘까지 가 있고 무수한 별빛들이 쏟아진다.

꼭지점에 누워계시는 ‘할매 형상’에 예를 갖추어 인사하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린다.

▲ 지리산 정상에 선 필자.     ▲ 여명.

지리산 정상에서 이어지는 중봉·연하봉·촛대봉 등은 산꾼들의 헤드랜턴 불빛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은은한 불빛이 아주 낭만적이다.

동녘 하늘은 초·분마다 무지개색으로 변한다. 이내 와∼우∼하면서 원초적 감탄사를 쏟아낸다.

아침햇살이 표지석을 비춘다. 이곳이 ‘산 명당 기운’이 맺힌 곳인지? 갈수록‘인증샷’문화가 확산하면서 ‘인산인해’다.

▲ 일출.     ▲ 달넘이.

잠시 후 길게 늘어선 줄에 은근슬쩍 50대가 끼어들자 감정조절을 못 한 20대의 거친 반말에 실랑이까지 벌어진다.

존중은 서로를 높이고 귀중하게 대하는 것이다. 어느 일방(一方)이 아니라 양방(兩方)의 존중이 핵심이다.

우리는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이 가장 소중하다는 착각에 빠져 상대방의 격이나 가치를 무시하는 장면을 종종 경험한다.

분별은 동전의 앞면에 지혜를 새기지만 그 뒷면에 갈등을 함께 새긴다.

▲ 서리내린 지리산.     ▲ 통천문.

날씨가 화창하다. 아침 햇살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 시켜 자율신경의 균형을 맞춰 정신 상태를 안정시킨다.

통천문, 큰 바위에 새겨진 각자(刻字)들이 여러 개 있다. 이 중 통천문(通天門) 황금색 글씨가 눈길을 끈다.

두 개의 바위기둥 위로 또 하나의 바위가 가로질러 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석문(石門) 건너편으로는 또 다른 풍경이 액자 속 그림처럼 펼쳐진다.

▲ 기묘한 바위.

11월의 끝자락 스산한 바람이 스친다. 단풍이 울긋불긋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갈색으로 변해 작은 바람에도 엄마의 품을 떠나 발아래 구르는 낙엽이 제 몸을 밟고 지나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단풍 나뭇잎을 밀어내는 ‘떨켜’길은 몸과 마음이 무겁다.

이별은 슬픈 일이지만 잎사귀를 버리지 않으며 훗날 나약한 삶을 살게 된다.

제석봉(1,808ｍ), 구상나무에서 향기가 물씬 뿜어져 나온다. 몸에 양의 기운이 샘솟는 곳이다.

▲ 가을계곡     ▲ 가을단풍.

시간도 충분하니 여기서 연하봉을 지나 촛대봉에서 장터목산장으로 되돌아왔다.

유암폭포, 길고 넓게 펼쳐진 어느 바위에 앉아 유암폭포에서 떨어지는 계곡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절로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다.

비탈진 돌계단 숲길은 봄꽃보다 더 아름답도록 붉은 단풍에 매료되어 삼매경에 흠뻑 빠져든다. 나무품종에 따라 이렇게나 색들이 다양하고 다르다.

자아 기능에 구멍이 나면 현실을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문제에 대처하는 힘이 약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