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산객과 풍광.

여름의 끝자락을 넘어 가을의 초입에 다가선 지난 8월 30일 지리산에 갔다.

조릿대 군락을 지나 물소리 나는 계곡에도 길섶에도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야생화가 지천이다.

그곳의 잊지 못할 인상 중 하나는 배낭 속에 엄청난 분량의 생필품을 지고 산 위로 올라가는 한 가족의 아버지는 자긍심이 가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틀 동안 가족 7명의 ‘의식주’ 무게 때문에 헉헉대는 숨소리 뿐 아니라. 아버지가 풍겨내는 짙은 땀 냄새에서 가족애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누구나 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지 않겠다는 어떤 숭고한 의지마저 느껴진다.

▲ 야생화.     ▲ 고사목

▲ 맑은 계곡수.

나에게도 가르침이 되는 바르고 멋진 친구였다.

이날 지리산 정상은 전국에서 찾아온 등산객들로 북적거렸다.

모자도 날려 버릴 만큼 부는 바람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장쾌하게 펼쳐지고 굽이치는 암봉이 공룡의 등뼈를 연상케 한다.

겹겹이 층을 이룬 산들이 신록을 맘껏 뽐내고 있다. 그 사이 깔린 운무가 신비감을 자아낸다. 발치 아래 야생화 군락지가 신록과 함께 조화를 이룬다.

제석봉에 도착했다.

▲ 계곡과 급류.

▲ 여인과 친근한 다람쥐.

제석봉전망대,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남녀 6명이 재잘거리며∙∙∙

요즘 세상에 결혼 축의금 5만 원 내고 2만5000원 식권 4장은 너무 한 것 아닌가. 온 가족이 왔더라 하객으로 와준 것만으로 고맙다 하기에는?

필자는 산들바람에 귀와 마음을 씻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사회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드러나게 돼 있다.

나 혼자 높아지고 싶다고 해서 높아지는 게 아니다. 남을 높여주고 떠받을 때 비로소 내가 높아질 수 있다.

높음의 차이는 얼마나 자신을 낮추고 주변 사람을 많이 높여주느냐에 달렸다.

▲ 등산객.

▲ 정상 표지석과 등산객.

마음에도 쓸데없는 힘이 켜켜이 쌓일 때가 있다. 훌훌 털어버리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집착 혹은 강박이란 멍에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제석봉에는 자연이 주는 선물 초롱초롱한 구절초, 산오이풀, 가을꽃들이 지천이다.

지금 한창이라서 야생화를 좋아하는 등산객이라면 한 번쯤은 가보아야 할 곳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