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 있으면 입춘(2월 4일)이다.

동장군의 위세가 아직 만만찮고 하얗게 눈이 쌓인 만동(晩冬)에도 양지 바른 야산자락에는 아마도 복수초가 봄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 지리산

머릿속을 떠돌던 갖은 집념이 사라졌을 때 지리산 정상(1915ｍ)에 당도해 있었다.

지난 3일 오전 정상의 날씨는 맑음과 흐림을 반복했다.

▲ 눈보라에 이정표가 숨었다 보였다를 반복한다.

순간 과학적 온도는 영하 26.5℃ 안팎, 카메라 기능도 옷 안 주머니 ‘핫팩’의 도움이 필요했다.

정상의 조망은 감탄의 연속이다.

▲ 지리산 눈보라 속 등산객

갑자기 하늘에 물체가 지나가기에 엉겁결에 사진부터 찍어 놓고 보니 까마귀였다.

그 앞에 깊디 깊게 파인 V자 칠선계곡이 이렇게 가까웠는가.

▲ 매서운 동장군의 기세에 휴대폰 작동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정상에서 보는 바위들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곧 추락할 듯 위태로운 것도 있다.

너무 높아서 천길 만 길이 되는 듯한 절벽이 발 아래 펼쳐진다.

하지만 추위와 칼바람 때문에 정상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칼바람은 필자의 등을 제석봉 쪽으로 떠밀었다.

▲ 지리산 천왕봉 등반 초입에 선 세친구

천왕봉∼제석봉까지는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어디가 길섶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위험한 구간은 암벽산행을 하듯 배를 ‘길섶봉’에 붙여서 기어내려 왔다.

이런 곳에선 배낭과 스틱도 장애가 되는데 목에 건 카메라까지 가슴 앞에 덜렁거릴 때는 어찌할 바가 없다.

▲ 지리산을 오르는 겨울 등반객

하산 길은 생각보다 길고도 길다.

약 7㎞의 긴 거리가 고도를 서서히 낮추면서 지루하게 이어진다.

그 가는 여정에서 자연이 안배한 산세와 계곡의 맑은 물이 어우러져서 지기(地氣)가 몸속으로 들어온다.

▲ 지리산 겨울왕국 속 얼어붙은 폭포

나는 요즘 시간이 비면 지리산을 자주 올라 사색을 많이 한다. 무료한 삶에서 벗어나고 좋은 지혜도 얻는다.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 어떤 사람보다 은근슬쩍 이간질에 대해 능통한 사람을 가끔 본다.

▲ 지리산

비밀은 짧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 없는 것 아닌가 등등 이다.

남들이 돈을 벌었다고 나도 벌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기회를 찾아 뛰어 들더라도 직접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충분히 키우고 난 뒤에 해야 한다’라는 지혜도 얻었다.

▲ 필자

필자는 등산 할 때 들머리에서 힘 빼고 가볍게 시작한다.

중산리∼칼바위∼지리산 정상∼제석봉∼장터목 대피소∼지리산 국립공원 중산리 탐방안내소까지 8시간 정도...

자연에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