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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역사 간직한 판문점을 가다공동경비구역을 통해 본 한반도 분쟁역사
구성옥 기자  |  k003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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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5  10: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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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이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갑오년 한 해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우리나라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비무장지대(DMZ)가 있다. DMZ는 말 그대로 민간인이 살지 못하고 군인들도 무장을 할 수 없는 동제구역이지만 버젓이 민간인들이 살고 있다. 대성동은 6.25전쟁이 휴전되던 해 남북이 DMZ 내에 마을을 하나씩 두기로 합의해 존치된 마을이다.

대성동 마을은 남한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내에 위치한 마을로 공동경비구역(JSA)내 위치한 특수한 마을이다. 1953년 휴전협정에 의해 남북에 하나씩 민간이 거주할 수 있는 마을을 두기로 합의하여 생긴 마을로. 원래 이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분단 이후에도 그대로 거주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남북 대치상황의 최전방 마을이다.

현재 대성동 마을에는 52가구 19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자유의 다리로부터 북으로 약 12.5㎞. 개성으로부터 남으로 약 11.5㎞ 떨어져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다. 특히 마을 북쪽으로 약 1㎞ 지점에 판문점이 위치하고 있고 마을로부터 40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다.

대성동 건너편에는 북한의 DMZ 민간인 거주지인 기정동이 있는데 이 두 마을사이의 거리는 불과 800m 정도다. 팔각정에 오르면 북한 주민과 큰 소리로 말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곳이다. 대성동에 펄럭이는 태극기 높이는 100미터인데 기정동에 나부끼는 인공기는 58미터가 더 높다고 한다.

대성동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이 마을이 대한민국정부가 아닌 유엔군 사령부의 통제하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휴전협정 제1조 10항 비무장지대 내의 “군사분계선 이남의 부분에 있어서 민사 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진다“ 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이 치외법권지대는 아니며 대성동 주민이 범법 행위를 하면 일단 대성동에서 추방되는 형식을 거친 후 대한민국 법률에 의하여 규제를 받는다.

또 대성동 주민은 참정권과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는 면은 다른 지역의 국민들과 같으나.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는 면제받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농가 소득은 가구당 7000-9000만원 정도로 높은 편이다. 대성동 안에 중.고교가 없어 학생과 학부모들은 주로 외지에 나가 있지만. 이 마을 유일한 대성초등학교는 사정이 정반대다.

전교생 30명 정원에 입학 희망자가 몰려 추점으로 선발하고 문산. 파주.일산 등지에서 전학 오기를 기다리는 학생도 늘 10여명씩 된다. 5년전부터 인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소속 미군들이 주 2-3일 학교를 방문해 영어를 직접 가르치면서 인기가 높아진 것이다. 이곳을 출입하려면 일일이 신분 확인을 거친 후 공동경비구역(JSA)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야만 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Joint Security Area)은 남북 600m 장방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군사분계선(MDL)없이 유엔군과 북한군이 유일하게 자유롭게 오갔던 지역이 였다. 하지만 1976년 8.18 도끼만행 사건으로 군사분계선이 설치돼 자유 왕래가 중단됐다. 판문점이란 이름은 정전회담 장소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중공군 대표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회담장소 부근에 있던 주막을 겸한 가계를 한자로 적어 판문점으로 표기한 것이 그 유래라고 알려지고 있다.

현재 5개 회담장이 이다. 하늘색 3개 회담장은 유엔사 JSA대대가 관리하고. 나머지 은색 2개 건물은 북한군이 관할하고 있다. 회담장을 빠져 나와 차량으로 5분 정도 가면 북한군 경비들에 의해 자행된 도끼만행 사건 현장이 있다. 미루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에는 당시 현장에서 희생된 미군 경비중대장 보니파스 대위와 소대장 바랫 중위의 추모 비석이 세워져 있다.

도끼만행 현장 오른쪽으로 200m 길이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위치하고 있다. 도끼만행 사건으로 76년 패쇄된 이 다리는 지금까지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 다리를 통해 유엔군사령부 측은 8만2000명 이상의 포로를 북으로 송환했으며. 북한과 중국은 1만3000명을 남으로 송환했다. 정전협정 조인 후 전쟁 포로들은 이 다리 양끝에 서서 자신이 선택한 곳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한번 건너간 후에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다리 앞에는 시멘트 위에 철판 군사분계선 표지만이 전쟁의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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