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광사.

''허 참 이상하네~ 40년 전에 내가 여기 왔을 때 이대로 있었는데, 지금도 똑같네~ 그 참 신기하네~''

이상한 일이죠.

허나, 신기 할 것 없습니다.

40년이 아니라 지금부터 2백 50여년 전(1751년) 조선 21대 영조임금때 '청담(淸潭) 이중환'이란 분이 쓴

'택리지(擇理誌)'에도 이렇게 씌여 있으니까요.

''종고루 앞에 누각이 있고, 그 앞에 한 그루 나무가 있는데, 옛날 보조국사께서 돌아가실 때에 말하시기를, '이 나무는 내가 간 뒤에 반드시 마를 것이며, 만약 다시 가지와 잎이 살게되면 내가 다시 환생한 줄을 알아라.' 하였는데 지금 반천년이 되어도 살아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칼로 껍질을 긁으면 안쪽은 촉촉하여 생기가 있으니, 만약 참으로 죽었다면 반드시 썩어 넘어졌을 텐데, 지금까지 항상 꼿꼿이 서 있으니 이것은 참 괴이한 일이다.''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선생이 송광사를 찾았습니다.

당시 송광사의 주지였던 '인암(仁庵)'스님과 고향수 앞에 섰죠.

''스님, 누가 더 멋진 시조를 짓는지 내기 한번 합시다.''

''허허... 그럽시다. 먼저 선생께서 한 수 가르쳐 주시죠. 나무 관세음 보살.''

노산 이은상이 읊었습니다.

... 어디메 계시나요 언제 오시나요?

말세 창생을 뉘 있어 건지리까.

기다려 애타는 마음 임도 하마 아시리. ...

인암스님이 화답을 하죠.

... 살아서 푸른 잎도 떨어지는 가을인데

마른 나무 앞에 산 잎 찾는 이 마음

아신 듯 모르시오니 못내 야속합니다. ...

어느 시조가 멋집니까? ㅎㅎ...

'기다려 애타는 마음...' 이나,

'마른 나무 앞에 산 잎 찾는 마음...' 이나, 하늘 향해 800백년을 선 채로

반쪼가리 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른 향나무, 고향수의 마음이나...

똑 같을 겁니다.

고향수.

승보종찰(僧寶宗刹) 조계산 송광사(曹溪山 松廣寺) 17.

송광사와 천옥(天獄)...

이제 조계산 송광사(曹溪山 松廣寺) 이야기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송광사는 우리나라 3대 종찰로 가장 훌륭한 국사스님을 가장 많이 배출한 승보종찰 이면서, 가장 많은 불교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명찰중의 명찰 입니다. 미처 소개하지 못한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호), 국사전(국보 56호),금동요령(보물 179호), 하사당(보물 263호) 등등... 8,000여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죠.

''...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길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

그리고, '무소유(無所有)'에 대하여도 말씀 하셨죠.

''...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것이 아니라, 필요치 않는것을 가지지 않는것이다. ...'' 라고요.

그런가 하면 오래전에 읽었던 '피천득(皮千得)'선생의 '은전 한 닢'이란 글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죠.

'... 오랜 고생과 노력 끝에 은전 한 닢을 얻고 기뻐하는 거지의 모습을 보며, 삶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성취의 기쁨을 전해 받는 한편, 맹목적인 소유욕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하시는구나. ...'

그렇죠 뭐...

이제 우리가 산에 드니 산 마저 정이 드는거죠.

오르고 내리는 길 괴로움을 다 모르고, 저절로 산인이 되어 얼음도 헤쳐 갑니다.

등산의 쾌감을 흔히들

'마운틴 오르가즘'이라고 합니다.

등산이든 무엇이든 최고의 낙이 오르가즘 아닌가요?

성공한 인생이란, 살아있을 동안에 최대한의 오르가즘을 누리다 가는 것을 일컫는 걸겁니다.

그날... 조계산을 오르던 날.

조계산을 오르다 만난 상고대는 최고의 감동이었어요.

가보지는 않았지만 마냥 산호초가 우거진 바다속 용궁으로 드는 느낌...

파아랗게 투명한 햇살아래, 눈이 부실듯 반짝이는 하이얀 서릿발...

귓가의 바람소리에 얼음의 보석이 발 밑에 깔리고...

멀리 도화인양, 벚꽃인듯, 달빛 맞은 이화 마냥...

가슴뛰는 감격에 말을 잊고 한걸음 앞서 눈을 드니, 하얗고 크다란 고요만 있었습니다.

그것은 환희로운 극락을 맛보는듯 불심이었고, 마음이 깨끗 해지는 정화의 걸음 이었으며, 모든것이 이렇게 베풀어졌으면 하는 자비 였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산세와 지세가 평온하여 이곳에서 머무는 몇 시간 만으로도 낮은 바람처럼 마음이 잦아듭니다.

그래서 여기를 '천옥(天獄)'이라 하는거죠.

일주문 바로 아래 송광사 중창의 공덕주와 신도비가 봉안된 '비림(碑林)'이 있습니다.

송광사를 찾아 산을 넘었던지, 산길을 한참 올라왔다면, 어떠한 이유에서던 여기까지 왔다면...

이곳 비림에서는 해이해진 마음을 추스려야 합니다. 그래야 보람을 안고가죠. 그래야 이 느낌 그대로 수 많은 먼저가신 신도들과 똑같은 자세와 위치로 스스로를 곧추세워 낼 수가 있을겁니다. 먼저가신 분들이던, 이제부터 느낌을 갖는 신촐내기 중생이던...

불일폭포에서 세속을 향해 하얗게 부서졌던 물이, 돌 사이를 돌고돌아 굽이치듯 아래로, 아래로 급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물이란 세 걸음만 흘러도 새 물이라 했던가... 하지만 중생의 마음은 왜 그리되지 않는지...

세 걸음 아니라 삼 천 걸음을 걷더라도 그리만 된다면 나는 물처럼 살아갈 수 있을것을... 세 걸음 흘러바뀐 물을 닮은 새 마음을 갖기가 이렇게도 힘듦이여...

나옹선사의 선시에는

'...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 하였는데...

종 소리, 불경 소리.

이름모를 새소리.

한 방향으로 곁가지를 낸 적송 무리.

곧게뻗은 초록의 편백 무리.

타고난 굵고 곧은 초록의 수직선들.

이것이 극락을 향한 자비심일까...

이제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길 못지않게 가슴이 벅찹니다.

송광사는 '하늘의 감옥'이기에

공부하는 스님도,

흘러가는 물도,

무심한 저 구름도,

나그네도,

스쳐가는 바람도,

그리고, 나도...

쉬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