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정상의 봄은 더디게 온다.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다.

지난 21일 새벽. 봄을 시샘하는 찬바람에 잠시 몸이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한낮 햇살은 봄이다. 정오 봄 햇살이 몸을 하늘로 띄울 듯 다사롭다.

▲ 지리산 해무리

최근 들어 봄철이면 미세먼지가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지리산 정상을 오르내리는 등산객 중 마스크는 기본, 선글라스를 착용한 사람들뿐이다.

흰색, 검은색 마스크, 일회용 마스크, 미세먼지∙황사 전용 마스크 등 다양도 하다. 마스크는 불편하다. 착용한 사람도 그렇지만 보는 사람도 그렇다.

▲ 나이를 잊은 등반객의 모습이 아름답다.

▲ 지리산 천왕봉을 정복한 꼬마 등반객은 여전히 생생한 모습이다.

등산모까지 깊이 눌러 쓰면 두 눈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패션이려니... 사정이 있겠거니 지나치다가 혹시 유명 연예인인가 호기심이 발동한다.

뒤돌아보려다 그만둔다.

미세먼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등산 중 목안의 점막이 마르면 미세먼지가 더 쉽게 달라붙기 때문에 물을 자주 마시는 게 좋다고 한다.

▲ 한겨울을 지난 지리산은 등반객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 세상은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도 너무나도 많다. 예쁘게 피어나는 꽃, 사랑하는 여인들의 미소, 천진한 아이의 미소를 보면서 우리는 행복함을 느끼고 절로 미소 짓게 된다.

필자의 눈엔 곧 추락할 듯 위태로운 바위에 앉아 커피향을 마시는 동연배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가 않아 본다.

아는 척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모른 척 내치지도 않는다.

커피는 색다른 맛이 있었다.

▲ 아직 휑한 나무가지엔 텃새가 봄을 부르고 있는가 보다,

천왕봉에서 제석봉으로 이어지는 음지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

우주만물이 자연 속에서 순리대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돌아간다.

늘어진 가지 끝에 새파란 새순이 올라오고 왕성한 생명력이 나뭇가지 끝에서 무섭게 솟구쳐 올라 만개한 꽃들이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 바이틈에서 내민 노란 얼굴이 가만이 올려다 보고 있다.

걷던 길섶 옆으로는 바위가 많다. 소담스레 피어난 노란 꽃이 간간이 피어있다. 이름모를 야생화 무리가 눈길을 사로잡고서는 좀체 놓아 주질 않는다.

바위틈에 누가 갖다 놓은 지도 모르는 앙증스러운 야생화가 반겨주니 절로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 지리산에 봄이 찾아오자 다람쥐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원한 바람을 좋아하는 야생화는 특권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고 반칙을 하려고 해야 할 수 없다.

한겨울 얼어붙었던 계곡도 어느 새 완전히 풀려 천천히 물비늘을 반짝이며 흘러가고 자갈들은 윤기가 나고 있다.

▲ 제법 시원한 물줄기가 흐른다.

계곡 맞은편에 자잘한 풀들도 머리를 풀고 부스스 기지개를 켠 채 한결 싱그럽게 땅위로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파릇파릇 돋았다.

오늘은 혼자서 이 많은 호사를 다 누려본다.